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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미술관초대전 志堂박부원

전시구분 초대전 전시장소 밀알미술관
전시기간 2015.12.05 ~ 2015.12.27 장르 도자
참여작가 박부원

 

지당 박부원의 도자그 일곱가지 이미지

 

전광식(고신대학교 총장)

 

동탁(東卓)선생의 수필 가운데 평생 가슴에 남는 글이 있다개울물 소리 들리는 산 밑에 네 평짜리 작은 서재 하나를 갖고 싶다는 소원이었다한 평은 장방형 서고(書庫)에 주고나머지 세평에는 고풍스런 문갑(文匣)에 난초분 하나사방 탁자에 백자 항아리 하나그리고 서화 한 폭에 차 끓이는 도구만 있으면 족하다는 것이다그것만 있다면 분잡한 세상사도 잊고 풀차도 마시고조랑대는 물소리 들으면서 개울가를 산책도 하고또 방바닥에 드러누워 와독(臥讀)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 것이리라선생의 염원이 이뤄졌는지 모르지만 내겐 그런 초옥(草屋)이 하나 있다.

선비 시인의 소박한 염원처럼 나도 별로 크지 않는 방에 옛 정취가 풍기는 선비장위에 고운 달항아리 하나 얹어 놓았다사방탁자 같으면 매병이나 소담한 백자화병도 좋으리라아니 장군항아리나 각호(角壺)면 어떠랴하여튼 목리(木理)가 그대로 드러나는 황토빛의 관재나 검은 빛깔의 흑칠 목가구에 하얀 백자항아리를 얹어 놓으면 색의 대조에서는 물론 조형의 원리에서도 깊은 아름다움이 우러난다그러면 선비는 그 항아리를 바라보면서 정서의 유희나 마음의 치유는 물론 그것에서 고매한 인격을 배우고 삶을 음미하며 세월을 잊고 살 수 있으리라.

모든 예술품이 그러하듯이 항아리도 시대와 기법을 논하고 이름을 붙이며 복잡한 기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그저 저기 눈앞에 두어 관조하고 음미하면 되는 것이리라학문은 머리로 하는 것이고 예술품은 가슴으로 다가가는 것이다특히 지당선생님의 작품처럼 도자의 명불허전(名不虛傳)이요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면 무슨 세치 혀()의 품평이나 네치 필()의 잡설이 필요하랴그저 쳐다보고 누리고 음미하면 그만인데.

 

학문세계처럼 지성의 곡괭이로 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감성의 지팡이로 산책하다보면 예술품은 우리에게 이미지로 다가온다그러면 지당의 도자들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워즈워드(W. Wordsworth)에게서처럼 어려서나 어른이 된 지금도’ 내 마음 뛰게 하는 무지개의 일곱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첫째지당도자에는 큰 강물처럼 느린 흐름과 묵직한 선이 있다그의 달항아리에서 구연부로부터 굽으로 내려오는 하향선이나그의 다완에서 땅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상향선을 보면 가늘거나 급하지 않고 날카롭거나 요란하지 않으며가파르거나 급격하지 않다그것은 굵고 완만하며느리고 묵직하며차분하고 평화롭다그것은 완숙한 경지에 다다른 자당작품의 깊이와 무게감을 드러낸다이러한 모습은 지당자신의 선비같은 몸가짐이나 고매한 인품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어진 마음과 평화로운 삶의 태도를 표현한다.

 

둘째지당작품에는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치솟아 오르는 소나무같은 고고함의 기상이 서려있다. 60cm를 상회하는 엄청난 크기의 대호(大壺)에서든지 아니면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다완에서든지 간에 당당함과 의연함은 한결같다세상의 다른 도자들은 풀이 죽어있거나 맥이 빠진 것들도 있지만 지당의 도자들은 힘이 넘치고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서려있다그것은 어쩌면 돈 있다고 으스대고 힘 있다고 집적대는 졸장부같은 인근 큰나라들에 대한 우리 민족의 당당한 기백을 보여준다.

 

셋째지당자기에는 산노을 같은 황홀한 아름다움이 있다그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도원요나 전시장을 들어서면 순간 실내의 가음 메운 미()의 향기로 인해 숨이 턱 막힌다모양도 각각이요색이나 빛깔도 가지가지나 도자기들은 서로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듯 강력한 아름다움을 제각각 발산하면서 하나의 신비로운 오케스트라를 이루며 미의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다그 반짝이는 아름다움은 귀부인들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금붙이나 보석들과 달리 장인의 손을 거쳐 불과 바람에 의해 흙에서 탄생된 아름다움이다지당의 손은 가히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기묘한 미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마술사의 손이다그리고 그가 그 손으로 빚은 도자의 아름다움은 그 자신의 맑은 영혼은 물론 우리 국민의 빛나는 영혼을 보여주는 듯하다.

 

넷째지당사기에는 언덕길을 걷는 촌부(村夫)같은 꾸밈없는 소박함이 있다언젠가 연변작가 고 장홍을(張弘乙)선생의 풍경화에서 늦가을 가파른 백두산 오솔길을 촌로 한사람이 소를 끌고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자연과 어우러진 그 삶의 소박함과 정겨움을 지당의 도자기에서도 느낀다그것들은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꾸밈이 없이 소박하다이는 채근담의 한 구절을 빌리면 큰 재주에는 기교가 없는 법으로 기교를 쓰는 자체가 졸렬하기 때문이다’(大巧 無巧術 用術者 乃所以爲拙). 지당의 작품들은 요란하게 색칠하는 일본의 화물(和物)이나 야단스럽게 꾸며대는 중국의 당물(唐物)과 같은 기교가 없이 절박하고 그윽하고 수더분하고 고즈넉하다그것은 되바라진 윗동네 족속들이나 약아빠진 아랫마을사람들과 달리 천성이 고운 우리민족의 심성을 역설한다.

 

다섯째지당도예에는 새벽이슬과 아침 햇살같은 신선한 해맑음이 있다선생은 백자달항아리를 빚던 청화병을 굽던 진사 다완을 만들던 한결같이 맑은 빛을 추구한다아니 기벽이 꺼칠한 이라보 다완도 그의 작품은 맑은 빛깔이 뚜렷하다그러다보니 그의 작품들에는 반짝이는 생명의 빛이 보이고꿈틀대는 삶의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진다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가 백자 항아리를 안고 이것에는 피가 흐른다라고 말한 바로 그 느낌이다따라서 지당의 달항아리를 갖고 있는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끌어안고 그 말없는 것과 인사와 교감을 나눈다고 한다이러한 해맑음과 생명기운은 신선한 아침나라’ (韓鮮)나라인 조선을 상징한다.

 

여섯째지당그릇에는 고향의 황토길이나 갯벌같은 풋풋함 그리움이 드리워져 있다그의 황이라보 다완은 우리 부모님들이 등에 지게를 지고서나 아니면 새참을 머리에 이고 훠이훠이 걸어간 고향의 향토길을 보여준다그 다완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면 고향의 흙내음이 나는 것은 물론 세상모르게 뛰놀던 동심의 세계가 아련히 펼쳐진다그리고 그의 갯벌다완을 어루만져보면 발바닥에서 감칠나게 느껴지던 갯벌의 그 포근함과 까칠함이 손바닥에서도 전율과 함께 감지된다도자표면의 작은 기포구멍들 속에는 마치 꽃게나 조개들이 숨어있는 듯하다그리고 도자내벽은 밀물과 썰물이 오가면서 내는 파도의 하얀 포말이 드리워져있다그러고 보니 지당의 다완에는 차()가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고향이 담겨있다.

 

일곱째지당도자기에는 별밤과 달밤 같은 은은함과 신비로움이 있다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이 삼라만상에는 신비함이 가득하듯이 도공들이 만드는 도자기에도 신기함이 그득하다특히 지당의 작품들을 보면 어떻게 이토록 별별 색들이 나오고어떻게 그토록 별별 색들이 나오고어떻게 그토록 가지가지 요변들이 생기는지 가히 불가사의할 정도다신앙이 깊은 그는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배웠는지 흙그리고 불과 바람 등 장작가마의 다섯가지 요소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조종하는 듯하다.

그렇게 하여 나온 자기들은 미묘한 색상의 천()가지 연출과 오묘한 요변의 만()가지 연기를 보인다그러므로 그의 작품 앞에 서노라면 마치 창조의 신비에 경외함으로 다가가듯 옷깃을 여미게 된다그 신비로움이 내겐 지붕과 정원장독과 마당으로 휘영청 떨어지던 소소가(蕭蕭家)의 그 푸른 달빛처럼 신비롭기만 하고또 그 지붕 위에 올라가 밤이 맞도록 쳐다보던 하늘가득한 별밤처럼 황홀할 뿐이다.

 

이렇게 지당의 도자기에는 흙과 불과 바람이 숨어있고달밤과 별밤이 담겨있다또 하늘과 땅이 잠겨있고시간과 영원이 펼쳐져있다그리고 차안(此岸)의 고향과 피안(彼岸)의 고향이 다 담겨있다아니 이 세상 모든 그리움이 들어있다.